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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수프15> 한 여자가 한 세상
한 여자가 한 세상
“지난달에 막내딸이 손주를 낳아 뉴욕에 갔다 왔네요. <중략> 내가 뉴욕까지 가서 그냥 올 리가 있나요. 자메이카 베이에서 바다낚시를 했네요. 세상에! 내 생전 잡아본 고기 중 가장 큰 걸 이번에 잡았습니다. 길이 1미터짜리 농어를. 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되는 놈을... 내가 칠십 넘도록 살아 뉴욕 앞바다에서 이렇게 큰 고...
<강석하의 짧은 시> 사랑
사랑
- 땅콩
당신
정말 그 꼴 겪으면서
월급 받아 왔던 거야?
그러고도
나 좋아한다고
땅콩 한 봉지
사 들고 온 거야?
.............
대한항공 여객기 땅콩 회항 사건도
어느덧 희미한 기억 속 옛이야기로 지워지고 있다.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뉴스를 접하면서
분개하기보다는 비애감이 아릿하게 가슴을 적셨다.
월급쟁이...
<양왕용의 시읽기 6> 정재필의 완사浣紗 가는 길
완사浣紗 가는 길
정 재 필
어려서 진외갓집 찾아 완사 가던 길은
개구리 형상으로 엎드린 개굴바위와
너우니 얕은 강물 가르며
건너던 버스길로 신기하기만 했다
반세기만에 뭉친 그 무렵 까까머리 적 친구들이
노중路中*의 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대평 내촌리에서 완사까지 잘 닦인 진양호 둘레길
수몰된 개굴바위와 버스길 얘기하며 걷는데
고향집과 유년...
<가요산책 23> 이용의 잊혀진 계절
이용의 잊혀진 계절 /이승주 시인
복현동 캠퍼스엔 꽃바람이 불어왔다. 학도호국단 군사훈련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책을 좀 보다가 저녁때쯤 도서관을 나왔다. 돌아갈 곳도 그저 막막해 도서관 옆 야외박물관 언덕에 비스듬히 앉았다가 가방을 베고 그 잔디밭에 누웠다. 아득히 멀리 서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물기 어린 망막에 얼...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6> OK 목장의 결투
OK 목장의 결투
/박명호 소설가
사상 최대의 흥미 있는 결투를 보기 위해 부산의 서면 일대는 수십 만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O여고 야전사령관과 K고교 야전사령관이었다. 이들이 복무하고 있는 학교는 지난 해 치러진 대입수능시험에서 각각 남녀 학교 꼴찌를 했다. 로터리 한가운데에 마련된 결투장에는 심판관인 시장과 교육감을 비롯한 ...
<강석하의 짧은 시 > 하늘의 별 따기
하늘의 별 따기
안 될 거라고
의심하느냐
비웃느냐
하늘에 오를 수 없어
따지 못한다면
별 스스로
내 가슴에
내려오게 하지
내년
늦어도
내후년 칠석날에는
은하의 별 몇 개
줄었음을 알리라
.............
시는 짧을수록 좋다.
장 콕토의 단시 몇 편에 매료된 것이
내 문청 시절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한 줄짜리 속담이나 ...
<가요산책 22> 이화자의 화류춘몽
이화자, 화류춘몽 /이승주 (시인)
유튜브로 미스트롯 송가인의 노래를 듣다 이 노래가 있는 줄 알았다. 이 무슨 때늦은 인연인가, 운명인가? 오래 전 잊은 옛 정인(情人)을 다시 만난 듯 만감이 스친다. 동병(同病)을 넘어선 상련(相憐)이다. 노래를 타고 눈앞에 금세 흑백필름이 흐른다. 밤늦은 시각, 취한 내가 인력거에 실려 흔들리고 흔들린다. 물론, 애...
<양왕용의 시읽기 5> 나무의 이름 /신진
나무의 이름
신 진
나무의 이름은
봄볕
숲 해설사께선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의
가지의 결과 꽃잎의 수를 구분하고
탐방객들은 좌뇌 깊이
종과 목과 이름 새기고 지나가는데
그래도 내 이름은 봄볕,
어깨에 손등에 사타구니에
나무는 아른아른 제 이름을 새긴다
나무의 이름은
바람소리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탐방객들은 대뇌피...
<책상과 밥상 사이 > 12.깊어가는 이 가을에
깊어가는 이 가을에
/윤일현 시인
“인생은 무언가, 또는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엮어지는 드라마를 닮았다. 그때 그 사람을 또는 그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되어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와 같은 만남을 그저 운명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고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병주의 ‘허망과 진실&rs...
서지월의 만주詩行(8)-이도백하(貳道白河) 가는 길
이도백하(貳道白河) 가는 길
서 지 월
長白에서 나와 이도백하(貳道白河) 가는 길
흔들리는 비포장도로 버스 속에서
동의보감 읽는 한 중년사내 만났네
언뜻 보기엔 옆모습이 시선 이백(詩仙 李白)과 닮아보이는
때절은 그 중년사내 내곁을 다가왔네
이것 한번 읽어보시우!
그 사내가 내민 건 바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허준의 '동의보감' 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5> 돈돈2
돈돈 2 /박명호 소설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끈기로 버티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위대한 철학을
나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몸으로 터득했다.
간밤에 눈이 많이 왔어도 설날 대목장엔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청년이 그 복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뽐내듯이 동전을 저글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도 동전 여러 개를 연이어 던지면서 받아내는 묘기보다 동전 하나를 ...
문학풍류 2020봄여름 호
<양왕용의 시읽기 4> 강은교의 바리연가, 푸른 소매
바리 연가, 푸른 옷소매
강 은 교
모퉁이에 그 집은 있었네
넓은 푸른 색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볼이 발그레한 금빛 소녀가 뛰어나와 나를 맞곤 했지
마리 마리
푸른 옷소매 지구처럼 날리던.
그러던 어느 날
나 적막해져 다시 갔을 때
푸른 옷소매
모퉁이는 사라져 버렸어
푸른 옷소매
모퉁이로 가던 자갈길도 없어져 버렸어
바리 바리
지구처...
<가요산책 21> 김미성의 먼 훗날
김미성의 먼 훗날
/이승주 (시인)
이런 날에는 이런 노래가 제격이다. 흐린 가을날, 가게 출입문 앞의 현수막이 찬바람에 펄럭이고 거리에 인적 끊어진 이런 날. 두문불출 마음을 닫아건 채 무료한 하루가 지는 이런 때, 느닷없이 내 입에서 노래 한 소절이 흘러나온다. 이 노래를 언제 적에 불렀던가.
행여나 날 찾아왔다가 못 보고 가더라도
옛정에 메이...
<인문학수프14> 불륜의 미학
불륜의 미학
작가 신경숙 이름을 들어본지가 좀 오래되었습니다. 표절 시비가 있고나서부터입니다. 작가에게 표절이란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신작가가 독자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비례해서 표절의 배신감도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 덕에 표절 시비의 도화선이 되었던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한 번 읽어 보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4> 사족蛇足에 대하여
사족蛇足에 대하여
/박명호 소설가
뱀의 물건이 둘이라는 사실을 나는 비교적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시골 장터의 약장수들은 늘 여러 마리의 뱀을 가지고 다녔다. 기다란 뱀의 머리통을 잡고서 ‘비-암, 비-암’ 하면서 비음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도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 뱀의 몸통을 쭉- 훑어 내려...
<책상과 밥상 사이 > 10. 감 대추 무화과
감, 대추, 무화과
어머니는 살아생전 꽃 가꾸기를 좋아하셨다. 도시 출신인 아내는 꽃과 채소 키우는 법을 시어머니로부터 처음 배웠다. 한창 바쁘게 살아야 했던 시기엔 어쩔 수 없이 아파트에 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집을 떠나자 아내의 채근으로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아내의 부지런한 손 발품 덕에 마당에는 사철 내내 갖가지 꽃이...
<가요산책20> 박신자의 댄서의 순정
박신자, 댄서의 순정
/이승주 (시인)
불혹의 나이에도 비밀이 없는 삶은 불행하고 애틋함이 없는 삶은 아름답지 못하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도 이제 늙었구나’ ‘세월이 참 유수와 같구나’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이 말을 무척 좋아했다. 좀 아련하게 애틋함이 있는 삶을 꿈꾸었다. 막연하게나마...
<양왕용의 시읽기 3> 성종화의 산이 묻는다
산이 묻늗다
/성 종 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본다.
산은
나보고 왜 그렇게 바쁘냐고 물어온다.
더러는
마음의 결도 눕히고
가다가는
숨고르기도 하라하는데
그렇게 바쁘게 가서
닿는 데가 어딘지 아느냐고 또 물어온다.
내
이 말을 혼자만 알아들어서야 되겠는가.
-<시집『간이역 풍경』(2012.6) 수록>...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3> 그의 백발을 정의할 수 없다
그의 백발을 정의할 수 없다
<박명호 소설가>
인생은 때때로 느닷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같을 때가 있다.
늘 가는 동네 목욕탕의 이발사가 팍삭 늙어버렸다.
평소에 가위질 하던 손이 약간씩 떨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조금은 ‘늙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저렇게 팍삭 늙어버릴 수 있는지 나는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