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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읽기 2> 오세영의 시계2
시계 2
오 세 영
저벅저벅
밤새 감방을 배회하는 저
초조한 구둣발 소리.
경내를 순찰하는
시침과 분침의 교대 신호가
정확하다.
시간을 감옥에 처넣은 이후
삶도
달력에 갖혀버렸다.
-<『문학사상』2012년 5월호 발표>
<약력>
194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
서울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받음...
악학괘범 다가가기 <10> 세종의 신악(新樂) 이념- 조선식 아악의 창제
세종의 신악(新樂) 이념- 조선식 아악의 창제
세종은 어느 날 아침 조회에서 주위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악(雅樂)은 본시 우리나라의 성음이 아니고 실은 중국의 성음이오. 중국 사람들은 평소에 익숙하게 들었을 것이므로 제사에 그것을 연주하여도 마땅할 것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서는 향악(鄕樂)을 듣고, 죽은 뒤에는 제사에 아악을 연주한다...
시가 있는 가요 산책 (19) 김부자의 카츄사의 노래
―
김부자, 카츄샤의 노래
/이승주 시인
잠든 세상의 지붕 위로, 잠든 세상의 이불 속으로도 소록소록 함박눈이 내려 쌓이는 야심한 밤이다. 나 혼자 깨어 있는 이 불면의 야심한 밤에, 시 공부하는 저녁 모임에 시 창작 강의를 하러 가면서 차 안에서 들었던 「카츄샤의 노래」가 시마(詩魔)와 함께 찾아왔다. 유튜브에 접속해 김부자의 노래를 찾아 어둠 속에...
<최서림, 시를 그리다 11> 황장의 힘
황장의 힘
/최서림
교회에 가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만 만나고픈 때가 있었지.
문단은 보이지 않고
시만 보이던 시절이 있었지.
아름다운 그 시절로 돌아가고파
강원도의 쭉, 쭉 뻗은 기운을 받으러 갔었네.
강원도의 깊고 푸른 시간 속으로 들어갔었네.
시간 밖의 아름드리 황장목만 실컷 보고 왔네.
마음만은 청장목이 되어 돌아왔네.
...
<양왕용의 시읽기 1> 송영택의 봄눈
봄눈
/송 영 택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여
꽃이 모두 씨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스산하게 매지구름이 모여들어도
그것이 다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서럽게
세상 살았다 하여
흔적을 남겨야하는 것은 아니다
살았다는 것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굳이 무엇을 남긴다면
그것은
덧없이 내리는 봄눈 같아서
닿기도 전에 녹아 내린다
-<시집『너...
<인문학 수프13>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外
1.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옛날 용봉(龍逢)은 머리를 잘렸고 비간(比干)은 가슴을 찢겼으며 장홍(萇弘)은 창자를 찢겼고 자서(子胥)는 썩어 죽었다. 그러니 이 네 사람은 현자라고 하는데도 살육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도척(盜跖)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질 하는 데도 도(道)가 있습니까?&rd...
9. 가을 하늘과 구름
가을하늘과 구름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 뒷산을 찾았다. 질풍노도의 젊은 시절, 주체할 수 없는 방랑벽과 밑도 끝도 없는 방황, 지적 허영과 과장된 상황인식, 능력에 대한 지독한 회의와 다소 엉뚱한 낭만적 자학, 앞이 보이지 않는 실의의 나날 등에 대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본 소나무 중 몇 그루는 아직도 살아남아 변함없는 ...
문학풍류 2020 봄여름호
마술사
마술사
아무것도 없죠
빈 모자입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저 비둘기
내 사랑도 그랬으면
눈속임이라도
잠시나마
네가 웃을 수 있다면
.............
천성이 어둑해서 남을 잘 웃기지 못한다.
외워둔 개그도 내가 재현하면
썰렁한 분위기만 자아낼 뿐.
오래전 너와 함께 했던 기차 여행의 시간들이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지금 다시 기회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2> 오랑캐 女人
오랑캐 女人
<박명호 소설가>
중국 북한 국경 부근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시켰다.
시간이 수십 년 전에 멈춰버린 것 같은, 물건도 사람도
모든 것이 낡고 헤진 식당, 창 너머 풍경마저 오래된 풍경이다.
“남조선 신사분이시네”
식당아줌마는 부끄러워하면서 인사를 건넌다.
“그렇습니다. 부산에서 왔습니다.&rdq...
<최서림, 시를 그리다 10> 달빛배꽃
달빛 배꽃
/최서림
조선시대에서 막 피어올라 왔나.
명주로 가린 얼굴이 사대부집 규수 같다.
백자 항아리 같이 겉으로는 서늘하지만
봄볕에 달아오른 몸에서 향기가 난다.
봄밤은 엉덩이 속처럼 깊어가고,
젖가슴만 겨우 가린 채
가만가만 창을 열고 달을 올려다본다.
이조백자의 아랫도리에 봄물이 가득 차오른다.
달이 빨려 들어와 찰랑찰랑 흔들린...
차안과 피안 -김 홍희의 범어사 사진
차안과 피안
-김 홍희의 범어사 사진
/배학수<경성대 철학과 교수>
현대에는 인간을 비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부정하는 고압적 종교가 판치고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비천한 존재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저 세상에만 존재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소외된 인간의...
서지월의 만주詩行(7) 흥개호에 와서
서지월시인의 만주기행시(7)
흥개호에 와서
서지월
바다도 아닌데 나를 유혹해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애인이여!
그 끝 간데는 어디란 말인가
바다가 아닌데
얼굴과 표정은 바다인 체하는
흥개호
네 숨은 속 마음
내 언제 알리
**흥개호 다녀온지 2년 지난 후에 쓰게 되었다. 위챗 《시인대학》에서 중국 조선족 160여명을 대상으로 시를 강의해...
악학궤범 다가가기<9> 악학궤범 제 1권 60조
악학궤범 제 1권, 60조
대학 시절 친구들과 노래방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남학생들은 자신의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 위해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선호했습니다. 끝까지 잘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을 고음을 내지 못해 중간에 키를 낮추고는 했습니다. F 장조곡에서 도는 F인데, 음을 낮추어 도를 D로 삼는다면 원래의 고음 노래도 수월하게 부를 수 있...
<가요산책18> 김정호의 하얀 나비
김정호, 하얀 나비
이승주 (시인)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을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도입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1> 도시락 갑을병
도시락 갑을병
<박명호 소설가>
갑.
갑은 점심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온다.
그가 가는 곳은 수돗가다.
갑이 물을 먹을 때는 꼭 꼭지를
입 속으로 깊게 밀어 넣고는 빨아 마신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때문인지
허기 탓으로 빨리 물을 마시려는지
점심 대신 애꿎은 물이나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선지
‘에라,&rsqu...
<가요산책17> 윤향기의 장밋빛 스카프
윤항기, 장밋빛 스카프
<이승주 시인>
그 어떤 장면이나 사건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여운으로 남은 그 어떤 노래는 우리 가슴 속에 오래 잊히지 않고 때때로 그때의 그 현장과 함께 그때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병역을 마친 복학생 형이었다. 대학교 새내기 때 첫 학과단합대회 자리였던가, 학도호국단 병영체험에 대한 격려와 위로의 자리였던가, 차례가 돌아와...
강석하의 짧은 시 <기장 돌미역>
기장 돌미역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초고추장 찍어 먹는다
미역처럼 흔들린다
미역처럼 어두워진다
뭘까
네가 전해주고
싶었던 맛은
미역처럼
말라 간다
나의 시간도
.............
네가 다녀가면서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다.
언젯적 일인지 아득하게 지나간 어느 날에...
무심코 열어본 찬장 구석에 돌미역이 숨어 있다.
그날 사용...
<최서림, 시를 그리다 9> 삼천포
삼천포
최서림
몸에 항구를 지닌 여인들은 사월이면
엉덩이가 삼천포 앞바다 만해지곤 했었다.
쫓기는 남자들이 살그머니 들어와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다가곤 했었다.
무언가를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듯,
죽어서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갈치처럼 날을 세워 잠들곤 했었다.
NL도 PD도 몰라서 더 큰 여자들,
여자가 아닌 여인들의 바다가 있었다.
...
<인문학 수프12>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우리가 보통 “그 사람 의리(義理) 있다”라고 말할 때의 의리는 소절(小節)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소절은 대의(大義)라고 보기에는 그 미치는 범위와 영향이 현격하게 작은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부모에 효도하거나 친구나 무리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게 소절에 해당합니다. 민족이나 국가,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