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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0> 소가 넘어갔다
소가 넘어갔다
/박명호 소설가
K여고에 변태 선생이 있었다. 평소 야한 이야기를 잘해서 ‘변태’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투 바람에도 끄떡없었다. 그런데 그의 물건이 뱀처럼 둘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학생들도 점차 ‘그래서 변태?’ 하면서 사실로 믿어지는 ...
<가요산책16>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백설희, 봄날은 간다
산아직도 내 마음의 고향은
벚꽃, 진달래, 자목련, 산수유가 피는 봄.
땅속에 흐르는 봄 물올라
순이의 대지에 흐르는 물도 색색이다.
봄이 오면 주점(酒店)의 순이는
다시 색색의 꽃이 핀다.
단층의 낡은 가겟집들이
저마다의 흐릿한 불빛으로 떠 있는 낡은 소읍(小邑),
꽃향기에 일렁이며 깊어가는 봄밤의 거리.
술값도 못...
서양화가 예유근의 시간 기억
서양화가 예유근의 시간 기억
-기억의 더께 일곱 - 꿈의 방랑, 동아대 미술학과시절
평범한 불운과 상실에 대한 기억은 무의식속에 남아 애도와 우울로 연관된다. 1973년 김강석선생님께서 운영하던 <부산종합미술학원> 강사면서 평소 날 동생처럼 좋아해주고 아껴주던 차종례(서양화가. 서울 그로리치화랑 운영)선생님이 하릴없이 시간 보내는 날 불러 같이 서울로 ...
생일
생일
<강석하 시인 /소설가>
세상은
아주 시끄러운
곳이구나
그래서
울었어
.............
살면서 마음 편하게 웃어본 적이 별로 없다.
과장된 기억에 의하면 울음의 시간이 9할이었다.
나도 태어나는 순간에 참 요란히도 울었다고 들었다.
고해의 삶을 예감했던 것일까.
서지월의 만주詩行(6) 경박호(鏡泊湖)를 가다
경박호(鏡泊湖)를 가다
서지월
앤과 함께라면 어딘들 못 가랴
서해안 신두리 바닷가의 풀밭언덕도 좋지만
만주땅 연길에서 3시간 남짓 기차 타고
북진해 가서 목단강시에 내려
거기서 50분 정도 버스 타고 가면
만나는 만주땅 최고 비경의 비취호수 경박호
스위스 레만호 다음으로 뛰어난 경관의 호수라니
산다면 얼마나 살겠는가
아른아른 물속에서 금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19> 오감도 2 /신식구식
오감도 烏瞰圖 2
-신식구식
어둑어둑 작은 산골에 평화 같은 어둠이 내려온다.
사리울타리의 미루나무 키가 한층 커 보인다.
비틀비틀 나귀 타고 장에 갔다 돌아오는 영감은 한 잔 걸쳤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노래가락 대신에 신식 가요로 흥얼거린다.
미루나무 위 까마귀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
<가요산책14> 김현식의 사랑했어요
김현식, 사랑했어요
88올림픽이 지난 그해, 동성로 네거리엔 겨울 밤바람이 매서웠다. 인적이 뜸해가던 그 거리에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리어카에서는 김현식의 애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걸음은 종종 쫓기는데 노래는 호객꾼처럼 귀를 이끌었다. 동성로를 다 빠져나와 지하도를 내려설 때야 비로소 노래는 따라오던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놓아주었다. 지금도 우...
악학궤범 다가가기<8> 8음도설
팔음(八音)과 팔풍(八風), 그리고 팔절후(八節候)
-<<악학궤범>> 1권 팔음도설(圖說)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여러 가지 악기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는 주로 관악기와 현악기로 이루어져 관현악단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타악기도 편성되어 있으며, 가끔 피아노나 첼레스타(celesta) 같은 건반악기도 등장합니다.
서양악기는 연주법으로 분류합니다...
<최서림, 시를 그리다 8> 어느 이상주의자의 죽음
어느 이상주의자의 죽음
/최서림
마침내 그도
책장에서 먼지 쌓인 『자본론』치워버렸다.
그렇게 한 시대가, 한 시대의 꿈이
한 사람씩에게서 지워졌다.
검사시보, 그에게도 싸움은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아니,
스스로 <적>이란 단어 지워버렸다. 아니,
통속적으로 그러나 침통하게
스스로 적이 되어 적과 싸우려 했다.
그 단어 너무 쉽게...
8. 묘비명 고치기
묘비명 고치기
휴가 기간에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을 다시 읽었다. 죽도록 사랑했던 여자가 갑자기 죽고 난 뒤 한 남자가 겪은 일을 다룬 ‘고인’이 새롭게 와 닿았다. 소설 속 남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사랑은 언제나 같은 단 하나의 이야기만 갖고 있다. 나는 그녀를 만났고, 그녀를 사랑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일 ...
밤비
밤비
강석하 <소설가 /시인>
울 거야
너만 포근히 잠들면
싫어
창 밖에서
담 너머에서
통통
발을 구를 거야
.............
부슬부슬 밤비 내리는데
네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너는 어떨까
아마도 포근한 잠속에 있겠지.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야속하다.
심술난 아이처럼 너의 창밖에서 발을 구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18> 돈돈
돈돈
굼벵이도 구부는 재주가 있다.
구렁이처럼 굽은 돌담은 그렇게 길었다. 나와 팔이는 사흘째 하굣길 돌담 구멍구멍을 생쥐처럼 후비며 살폈다. 녀석이 장터아이들에게 뺏길까 해서 숨겨놓은 돈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비잉씨-
그러나 욕은 속으로 삼켜야 했다. 내게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내가 좋아 돈을 주겠다는데 그까짓 바보스러움 정도야 애교...
<인문학 수프11> 소박한 경험과의 작별
소박한 경험과의 작별
사람마다 공부를 하는 목적이 다릅니다. 입시생에게는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적이고 취업생에게는 취직이 목적입니다. 학자들에게는 학문의 성격에 따라 공부의 목적이 생깁니다. 학문마다 숭상하는 게 조금씩 다릅니다. 대학에 여러 학과가 있지만 크게 묶어 보면, 돈 버는 것(직업교육), 궁금증을 푸는 것(순수 학문), 편리한 삶을 도모하는 ...
<가요산책13> 송창식의 고래사냥
송창식, 고래사냥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5) 우수리강에 갔었네
우수리강에 갔었네
/서지월
우수리강에 갔었네
만주땅 밟아보자 밟아보자 해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 답답한 분지도시
대구시인들 뒤로 하고 푼돈 긁어 모으고 모아
인천공항에서 아시아항공에 몸을 싣고
서해안 거슬러 올라가 압록강 위
옛고구려땅 하늘 가로질러
연길공항 내렸었네
백산호텔에서 연변시인협회 시인들과
정을 나누고
리성비시인이 초청한 ...
오늘의 시6. 김금아의 라파즈에서 한 시간
라파즈에서 한 시간
/김금아
뉴스를 쏟아내던 브라운관에서
플랑크톤이 떠밀려오고
볼리비아 마녀 상회에서는
상아인형들이 창문을 열고 달아난다
찢겨나간 스크린에 매달린
아나운서,
입술에 생크림 거품을 품어내며
오늘의 스폿뉴스를 쏟아낸다
스피커의 진동판 울림에서
하얀 티티카카 호수가 깨어난다
물속에 잠긴 암벽도시에서는
...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17> 미투 투미 /아닌밤 홍두깨
미투 투미
-아닌 밤 홍두깨
산불이 났다.
띄엄띄엄 보이던 등산객들이 급하게 산을 내려오고 있다. 불길은 사방으로 퍼져간다. 중간 중간 서 있던 늙은 소나무들을 그대로 스쳐간다. 큰일이다. 바람이 세계 불면 불길이 삽시간에 내가 있는 쪽으로 덮칠 수도 있다. 나는 너덜너덜한 바지가 불을 피하는데 거치적거릴까 봐 바지를 벗어 쥐고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행복
행복
외로우니 참 좋다
찾아갈 이도
찾아올 이도 없이
내 그림자 하나 벗 삼아
묵묵히 선문답 주고받는
일요일 오후의
나른한 하품
산수화의 여백 같은 삶이다
.............
세상 쪽으로 높은 벽을 쌓고 산 지 십수 년.
가끔 만나는 이 있으면 애써 태연한 척 웃지만
어찌 자가격리의 긴 세월에 외로움이 없었겠는가.
그래도 아직은...
<가요산책12> 조성모의 가시나무
조성모, 가시나무
그대와 나 사이를 강이라고 한다
나와 나 사이를 비루함이라고 한다
그대에게 이르는 길을 노래라고 한다
나에게 이르는 길을 눈물이라고 한다
―이승주
노래는 오감으로 들어야 한다. 귀로는 가사와 가락을 따르며, 눈으로는 노래의 덩굴이 가슴 안으로 들어와 감기는 것 보며, 입과 코로는 노래의 맛과 향을 음미한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
<인문학 수프10> 마왕의 추억
마왕(魔王)의 추억
TV에서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魔王)>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재미난 스토리텔링과 함께 <마왕>을 들으니 정말이지 ‘마왕’을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인간의 삶, 이야기’가 첨부될 때 감동의 증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