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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달곰
작성일 : 2025.07.27 10:53 수정일 : 2025.07.27 10:59 작성자 : 김하기
지리산의 반달곰
미련하다 못났다 골려도 좋다
재주는 없다 마는 할 짓은 다한다
태산이 높다 해도 못 오를게 무어냐
험한 길 자빠져도 웃으면서 일어나
자빠져도 코를 다쳐도 울지 않겠다
산만 보고 걸어가는 나는 곰이다 - 최희준-
기원전 2457년(上元 甲子) 10월3일. 하늘은 높고 화창했다.
환인 천제의 윤허를 받은 서자 환웅천왕이 풍백 우사 운사 삼신과 삼천 관리를 대동하고 삼위태백산三危太白山(백두산) 가장 밝은 산 높은 곳, 제일 큰 나무 신단수 아래 강림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뒷산 13 정맥을 타고 마루금을 따라 신단수 아래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신단수 나무에는 하늘에서 따라 내려온 삼족오가 자리 잡았고, 곰 · 호랑이 · 늑대 같은 짐승들도 먼발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마냥 부러워했다.
환웅이 나라를 세우고 홍익인간 재세이화로 사람들을 다스리자, 이 모습을 부러워하던 반달곰과 호랑이(濊貊)가 사람이 되겠다고 찾아왔다.
“환웅천왕님, 저희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반달곰과 호랑이는 바닥에 엎드려 환웅천왕에게 고했다. 환웅천왕은 감동하며 말했다.
“오, 기특하구나! 너희들이 진정 사람이 되고 싶으면, 동굴에 들어가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만 먹고 삼칠일 21일을 견뎌야 하는데, 할 수 있었겠냐?”
“천왕님. 저희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다 하겠나이다.”
반달곰과 호랑이는 호언장담하며 마늘과 쑥을 받아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평소 쑥과 마늘을 먹어 왔던 반달곰은 21일을 잘 참자, 몸의 시커먼 털이 하나하나 빠지느니 아름답고 피부에 참한 얼굴의 여자 웅녀가 되었다.
사람이 된 웅녀는 신단수 아래 정안수를 떠 놓고 밤마다 지극정성으로 빌고 또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제님의 아이를 낳게 해주십시오!”
이 모습을 지켜본 환웅천왕은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했고, 웅녀는 열 달이 지나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니 우리 민족의 고조선이다. 이때 중국의 전설 속 임금 요임금이 나라를 세웠으니, 우리 배달국 고조선이 훨씬 앞선다고 봐야 한다.
배달국 고조선 사람은 모두 웅녀 반달곰의 후손인 셈이다.
우리의 사촌인 반달곰은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 전역과 만주 · 연해주에 살아 우리 조상들이 흔히 ‘곰’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반달가슴곰이다.
사람이 되질 못한 호랑이는 대신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받았고, 반달가슴곰은 사람을 따라 백두대간 최남단 지리산에 많이 서식해, 지리산 반달가슴곰이란 애칭을 받았다. 현재 남쪽 지리산과 오대산 태백산 설악산 등에 적은 개체만이 남아 있다.
곰은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매우 신성시했던 듯하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여러 곳에 곰의 이야기가 나온다. 단군신화를 보면 곰은 인내심이 강한 동물로 나타난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 환웅천왕이 주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동굴 속에서 21일을 견뎌낸다.
곰의 인내심은 웅녀가 국모가 됨에 따라 우리나라 여성 어머니의 표상이 되고, 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김수로왕의 왕후 허황옥이 곰 꿈을 꾸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곰은 매우 상서로운 동물로서 인식되었다.
신라 대성효이세부모조大城孝二世父母條에는 김대성의 기록이 있다. 대성이 장성하자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 곰을 잡았다. 그날 밤 꿈에 곰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대성을 잡아 먹겠다고 위협했다. 대성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자, 곰은 절을 세워달라고 한다. 김대성이 곰을 잡은 자리에 절을 세워 장수사(長壽寺)라하였다. 현 경주 토함산 마동삼층석탑 자리다.
이와 같이 반달가슴곰은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사람과 함께 해 우리의 사촌이 아닐 수 없다.
곰은 사람의 사촌이다. 사람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배 아픈 사람이 곰을 미련한 동물로 비하한 속담을 한번 찾아보자. 급히 해야 할 일을 느릿느릿할 때 “곰 가재 뒤지듯”이라고 한다. 둔하고 미련하여 스스로 해치는 짓을 할 경우 “곰 창날 받듯”이라는 속담이 나왔다. 일한 사람은 제쳐놓고 엉뚱한 사람이 보수를 차지할 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라는 속담도 나왔다. 고집이 세고 철면피 같은 사람을 곰 발바닥에 비해, “곰 발바닥 같다.” 방 안에서 여러 명이 담배 연기를 많이 피우면, “곱 잡는다.” 미련한 사람이 살 방편이나 꾀를 내면, “곰 발바닥도 꾀가 있다. 서울 사람이 매우 인색한 것을 빗대어. ”시골 깍쟁이 서울 곰만 못하다.“ 운수 나쁜 사람이 하는 일마다 안 될 때,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바느질을 못 하는 사람을, “바느질에는 소나 곰이나” 등 속담이 나왔다.
곰에 관한 민담에서도 곰의 미련한 성격을 이용 곰을 잡는 방법이 있다. 곰 다니는 길에 망태에 큰 돌을 넣어 달아놓으면 곰이 머리로 돌을 받고 또 받다가 결국 죽고 힘 안 들이고 곰을 잡는 방법이다.
우스갯소리로 수곰 잡는 방법도 있는데, 큰 나무를 베고 나무 그루터기를 쪼갠 뒤 쐐기를 박고 그 안에 먹거리를 넣어놓으면, 곰이 그 위에 걸터앉아 쐐기를 빼다가 불알이 찢겨 잡는 방법이다.
곰나루 전설은 산중에 들어갔던 청년이 곰과 혼인하여 아기까지 낳았는데, 나중에 곰 굴을 탈출하여 도주하자, 곰은 뒤따르며 애타게 울부짖다가 아기까지 강물에 던지고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필자의 산 벗이 오래전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과 마주친 적이 있단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 산장 예약이 어렵다.
어느 여름날, 친구는 혼자 지리산 종주를 하다 밤길에 그냥 연화천 부근 산길에서 비박을 했다. 피곤해 쓰려져 자는데, 누가 자신을 깨우더란다. 잠결에 눈을 떠니 어둠 속에 반달곰이 친구의 이마를 혀로 핥고 있었단다. 아마 종일 땀을 흘려 이마에 소금기를 반달곰이 핥은 것으로 생각한다. 순간 잠에서 깬 친구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은 척할까 했는데, 곰이 친구의 머리를 혀로 핥다가 머리에 있는 헤드 란탄을 켰던 것 같다. 불빛에 놀란 곰은 숲속으로 달아났단다. 곰이 핥은 이마가 사포로 밀은 듯 흉터가 남았다.
옛말에 ‘곰을 마주치면 죽은 척을 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곰은 호기심이 많아 쓰러져 있는 사람을 깨물거나 발로 찰 수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 만일 곰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할 경우 막대기 등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위협해야 한다.
반달가슴곰은 열매나 새순 등 초식을 좋아하고 가끔 죽은 동물 사체를 간간이 먹을 뿐 직접 사냥은 하지 않을 정도로 온순하다. 혹 산에서 곰과 마주쳐도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곰이 흥분하거나 화가 났을 때는 목 부분의 털을 곧추세운다.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빼놓고 다 먹고, 다리가 있는 것은 책상 빼놓고 다 먹는다는 중국의 팔보채 중 곰의 발바닥 요리가 있다.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 음식을 먹지 않고 발바닥만 핥기 때문에 진미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에도 웅장熊掌이라고 하여 곰의 발바닥 요리가 나오긴 나온다.
사촌인 반달가슴곰의 몸은 검은색이고 가슴에 브이자 형의 흰 무늬가 있다. 도토리·다래·산딸기·꿀·밤 등을 즐겨 먹고 곤충과 작은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가끔 노루·산양 등을 공격하기도 한다. 깊은 산 나무둥치 밑 굴이나 바위굴, 조릿대숲 등에서 겨울잠을 자며 2~3월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1982년 천연기념물(제329호)로 지정됐다.